이주배경 청소년 지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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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에세이]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 멀리 타국에서 로니(가명) 저는 2004년도 7살에 어머니를 따라 중앙아시아에서 대한민국에 와서 13년간 불법체류자로 생활을 한 학생입니다. 학생으로서의 불법체류자란 심리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마치 제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권리도 누릴 수 없는 것만 같았고 언제나 제 자신을 감옥에서 탈옥한 탈옥수처럼 느꼈습니다. 무슨 일이 발생한다면 경찰은 나의 편이 아니었고 언제 어디서 잡힐지 모르는 불안감과 누구에게 신고를 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저는 한국인처럼 헤어스타일과 옷을 입으며 제 신분을 숨기고 다녔습니다. 저에게 제일 절망적인 것은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학생으로서 꿈을 향해 도전도 해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불법체류자란 마치 온 세상이 저의 편 아닌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모를 나이였습니다. 어머니는 한국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김공장에서도 일하시고 옷공장에서 일하시고 다양한 일들을 하며 집 밖으로 나서셨습니다. 때문에 저는 집에 혼자 속박되어 살아 왔습니다. 속박된 생활에 그 당시에 친구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어느 날 자주 다니던 슈퍼가게 사장님에게 그의 아들을 소개 받았습니다. 말은 잘 안 통했지만 놀다 보니 한국어 실력이 빠르게 성장을 했습니다. 노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지만 그 친구는 학교와 학원 때문에 자주 놀지를 못했습니다. 그 친구와 놀기 위해 그 친구의 학교 정문에서 3시간씩 자주 기다렸습니다. 그를 기다리면서 저는 책가방을 맨 학생들이 언제나 부러웠습니다. 저도 학교를 가야 할 나이는 다 되었지만 외국인이라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을지의 여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평상시에 어머님은 일 때문에 바쁘셔서 밖에서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몸이 많이 통통해져서 태권도 도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태권도는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태권도 사범님도 제가 외국인이라서 한글과 숫자를 가르쳐 주시며 관심을 많이 주셨습니다. 저는 태권도에서 특히 진급할 때마다 제 띠의 색깔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최강의 띠를 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빨강띠에서 멈추었습니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이 제 길을 가로막아 섰습니다. 친구들은 품띠를 얻고 목판을 멋있게 격파하며 다양한 멋진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 당시에 어린 마음에 너무 억울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태권도 생활이 끝났습니다. 한 교회의 소개로 초등학교13살에 4학년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나이로는 5학년부터 다녀야 했지만 4학년이란 공백 기간에 한 단계 아래로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분이 좋았습니다. 처음에 학교생활 적응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적응해 나가면서 제가 원하던 좋은 친구들이 생기고 이제는 집에서 속박될 일이 없었습니다. 학교생활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때로는 제가 외국인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잊어가면서 말이죠. 그러나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말 고시원에 살던 저는 전화를 통해 어머니가 출입국관리소 단속반에게 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세상이 캄캄 했습니다. 불법 체류자인 저를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편지를 써주며 도와줬습니다. 교회에 계시는 변호사님도 노력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역시 어려워 보였습니다. 어머님은 감옥에 갇혀 계셨고, 저는 그 동안 목사님의 가정집에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한국의 가정생활이라는 것이 낯설고 힘들었지만 밥을 해주시고 여러 가지를 챙겨 주셨습니다. 어머니 같았던 목사님의 사모님, 장난꾸러기 동생 같은 목사님의 아들, 야단을 치고 맴매를 주셨던 아버지 같은 목사님, 일반적인 가정생활을 느껴 볼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렇게 일반적인 가정생활을 하며 어머님이 풀려날 수 있게 기도도 드리며 기다렸습니다. 6개월이 지나갔습니다. 어머니는 제 교육의 의무 때문에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6개월간 있었던 어머니를 보니 너무 기쁘고 눈물이 났습니다. 교회에서는 벌금까지 내주셨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교회 사람들 말고도 저를 도와주는 수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축복 이었습니다. 새 출발에 어느덧 저는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대학교와 진로를 고민할 시기입니다.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불법체류자 학생의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그런 고민 속에 함께 나눌 친구와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저는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학교 활동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예술과 다문화 사회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와 관련된 행사나 대회에 참여도 하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졸업이라는 운명의 벽에 맞닥뜨렸고 수많은 노력과 도움 속에서도 저는 결국 대학에 가지 못했습니다.

2017.05.30
뉴스레터 [에세이] 인생지사 새옹지마

인생지사 새옹지마 바토(가명, 대학 재학중) 인생지사 새옹지마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유독 이제 와서 제 삶을 돌아보며 저에게 참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년 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바라보고 있던 저도, 1년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바라보던 저도, 현재의 이런 삶을 예상하진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학자로서의 삶을 꿈꾸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현재의 일상적 생활을 그때에는 흐릿하면서 막연하게만 꿈꿔왔습니다. 외국인이기에 또한 무엇보다 미등록이기에 현재의 생활은 막연한 꿈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현재에 다 다르기까지의 저의 굴곡진 생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혼하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엄마는 저를 혼자서도 훌륭하게 키워내겠다며 외국에서 일을 찾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모들의 손에 키워졌습니다. 그러다 몽골의 가난한 환경보다 한국의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길 바랐던 엄마의 바람대로 4살에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미등록인 상태로 말입니다. 그게 이 이야기의 시초였던 것 같습니다. 4살에 한국에 오며 미등록 상태가 되었고 남들 다 받는 의무 교육을 학교에 사정사정해서 겨우 입학하여 다녔습니다. 또한 보호 받아야 할 경찰에게서 영문도 모른 채 습관적으로 멀리 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다치는 것이 걱정되어 운동도 멀리 해왔습니다. 이런 생활이 오직 나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릴 때 이러한 생활은 저를 또래 친구들보단 아주 조금 더 일찍 철이 들게 하였습니다. 미등록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철없이 굴던 제가 중학교에 들어가며 사실을 알게 되자 저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해온 공부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학교 말이 되면서 저는 고등학교 입학의 문제에 놓였습니다. 고등학교부터는 의무교육이 아니었기에 미등록인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러 방법을 알아보다 무지개 센터의 도움으로 겨우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고등학교 이상은 어려울 것이란 걸 어렴풋이 알았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었음에도 공부하였습니다. 친구들이 ‘너는 외국인 전형으로 쉽게 갈 수 있는데도 왜 공부하냐’고 간간히 물어볼 때도 멋쩍은 웃음만 지은 채 공부하였습니다. 왠지 공부만은 절 구제해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도 어느 새 끝을 보고 있을 때 바뀐 것은 성적뿐이었습니다. 그때는 안될 걸 알면서 한국에서 계속 공부하기를 희망했습니다. 결국 그러다 졸업을 하며 한국에서 저의 오랜 학교 생활도 막을 내렸습니다. 대학에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혼자서 방황하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만을 했습니다. 그러다 제 처지에 비관해 하며 엄마에게 화풀이를 해대었습니다. 그때는 단지 누군가 저를 구제해주기를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자진출국 기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대학에 원서를 넣어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진출국을 준비하였습니다.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결과를 확인하였습니다.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합격발표를 받고 자진출국을 한 후 유학 비자를 받고 한국 땅을 두 번째로 다시 밟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국에서 17년을 살면서 힘들고 서러웠던 적이 많았지만 그 만큼 그런 일들을 잊게 해준 좋은 추억들도 많았습니다. 또한 그런 일들이 ‘나’라는 존재를 더욱 성장시키게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제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며 대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 진로 고민을 할 때만 하더라도 대학교에만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만 같았지만 지금도 1년 후, 더 나아가 5년 후의 진로를 다시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아슬아슬하며 많은 고민을 품으며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위기와 시련들을 겪으며 조금은 내성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위기와 시련이 오겠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제 방식으로 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습니다.

2017.05.30
뉴스레터 [칼럼] 모든 이주아동이 꿈을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바라며

모든 이주 아동, 청소년이 꿈을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바라며 김사강 연구위원(이주와인권연구소) P군은 올해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18세 청소년이다. 홀로 다섯 남매를 키워온 어머니를 돕기 위해 어서 빨리 취직을 해야겠다던 속 깊은 아들이자, 돈을 벌어 어린 동생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싶어 하던 든든한 형이기도 하다. 이런 P군이 지금 철창 뒤에 갇혀 있다. 체류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일하던 공장에 들이닥친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에게 붙잡혀 외국인 보호소로 넘겨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 번도 한국 땅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P군은 지금 어머니에게 이야기로만 들었던 낯선 모국으로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해있다. 또 다른 청소년 M군도 5년 전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M군은 친구들의 싸움을 말리다가 경찰서에 참고인 자격으로 가게 되었는데, 조사 과정에서 미등록으로 체류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M군을 출입국에 인계했고, M군은 보호소에 갇힌 지 사흘 만에 강제 추방당했다. 이 사건이 알려진 뒤, 수많은 시민사회단체가 M군의 재입국과 복교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 비록 미등록으로 체류하고 있더라도, 당사자가 아동이고 학생이라면, 국가가 교육 받을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2년여의 지속적인 활동 끝에 법무부로부터 미등록 체류 아동이 단속을 통해 적발되더라도 초‧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라면 졸업 시까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강제 추방을 유예하겠다는 지침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얼마 뒤, M군은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 . . 그런데 당시에도 우려가 되었던 상황은 바로 P군 같은 청소년의 경우였다. 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는 아동의 교육권 보장이라는 명목으로 강제 추방을 피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고 있거나 이미 졸업한 미등록 이주아동은 쫓겨나야 하는 것일까? 또,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는 법무부의 지침이 과연 미등록으로 체류하고 있는 이주아동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이러한 우려 속에서 제안된 법안이 바로 2014년 국회에서 발의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안)>이었다. 이 법안은 국내에서 출생했거나 입국 후 5년 이상 계속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아동, 건강‧안전‧교육이나 그 밖의 인도적인 사유로 국내 체류를 보장해야 할 사정이 있는 이주아동에게 특별체류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아동 및 부모의 “불법체류”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법무부의 반대를 넘지 못한 채 국회 회기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하지만 미등록으로 체류하고 있는 이주아동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려는 시민사회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1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네트워크를 발족하여 P군과 같은 미등록 이주아동을 비롯해 부모로부터 유기, 방임, 폭력 등 아동학대의 피해를 당하고 있는 이주아동들의 체류권 보장을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미등록 이주아동이나 보호가 필요한 이주아동들에게 체류권은 다른 권리에 우선한다. 체류가 안정적이 되어야만 교육권, 건강권, 보호권 등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주아동들이 꿈을 키우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5년 전 추방당했던 M군은 당시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뭐가 되고 싶다’는 꿈도 꾸지 못한 채 살았다”고 밝힌바 있다. 지금 보호소에 갇혀 있는

2017.05.29
주요행사 무지개청소년센터 제5기 청년활동가 발대식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무지개청소년센터는 지난 5월 28일(일) 센터 다톡다톡 카페 학습공간에서 제5기 청년활동가 발대식을 개최했다. ‘이주배경청소년에 대한 인식제고 프로젝트 공모전’을 통해 선발된 제5기 청년활동가는 총 4개의 프로젝트 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으로 약 7개월 간 서울, 경기, 대구 3개 지역에서 이주배경청소년에 대한 창의적인 인식제고 프로젝트를 수행할 예정이다. 이날 발대식 1부는 무지개청소년센터 고의수 소장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무지개청소년센터 및 센터 사업소개 및 청년활동가 한 명 한 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하였다. 2부에서는 청년활동가 사업소개 및 팀 별 프로젝트 기획안을 공유하고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였다. 또한 본격적인 프로젝트 수행에 앞서, 청년활동가가 꼭 숙지하고 있어야 할 기본 행정 절차와 회계교육이 진행되었다. 한 청년활동가는 “공모전에 당선되어 기쁘기만 한 마음으로 발대식에 참석했는데, 다른 팀들의 내용을 보고 우리 팀의 내용도 더욱 보강하여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다.”고 하였고 다른 청년활동가는 “청년의 아이디어와 국민들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프로젝트라 그 의미가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의미있는 곳에 올바르게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2013년을 시작으로 올해 다섯 번째 멤버인 청년활동가들이 앞으로 자신의 지역에서 다양한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스스로도 성장하고 우리 이웃에게도 이주배경청소년을 잘 알려갈 수 있도록 기대한다. ▣ 문의: 연수개발팀(070-7826-1561)

2017.05.29
주요행사 코오롱 후원사업 무지개디딤돌 4차 이끄미교육 실시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무지개청소년센터)에서는 지난 5월 27일 코오롱과 함께하는 이주배경청소년 멘토링 프로그램 ‘무지개디딤돌’의 4차 이끄미 교육을 실시하였다. 8개월의 활동 기간 중 총 4번 실시하는 이끄미교육 중에서 마지막이었던 이번 이끄미 교육은 멘토링 활동 종결을 주제로 진행되어 이에 대한 이끄미들의 다양한 고민거리를 해소할 수 있었다. 교육에 참석한 한 이끄미는 ‘멘토링 활동에서 만난 오르미와는 그동안 선생님과 학생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 만나고 있다. 내가 오르미에게 도움을 준 면도 있지만 나도 멘토링 활동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2차부터 4차 이끄미교육의 슈퍼바이저를 맡아주신 신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조성심 교수님께서도 ‘유사한 배경을 가진 이끄미와 오르미가 매칭되었기 때문에 오르미들에게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각자의 학업도 바쁠 텐데 끝까지 멘토링에 참여한 점이 대견스럽다’고 이끄미들을 격려해주셨다. 무지개디딤돌은 앞으로 7월 1일 종결식을 남겨두고 있다. 종결식에서는 그동안의 멘토링 활동을 되돌아보고 열심히 참여한 이끄미와 오르미를 격려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문의: 초기지원팀 070-7826-1436

2017.05.29
주요행사 “다톡다톡(多talk茶talk) 프로젝트” 우수사례 발표회 실시

지난 5월 17일(수), 이주배경청소년지원재단 무지개청소년센터 다톡다톡카페에서 이주배경청소년 상담 및 심리치유 프로젝트 다톡다톡(多talk茶talk) 우수사례 발표회가 열렸다. 다톡다톡(多talk茶talk) 프로젝트는 현대차그룹이 사회 적응이나 학업 수행 등에 어려움을 겪는 이주배경청소년들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재단에 기탁하고 있는 사업으로, “다톡다톡(多talk茶talk)”은 “다(多)문화 청소년”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차(茶)”를 마시며 “속 깊은 이야기(talk)”를 마음껏 나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번 다톡다톡(多talk茶talk) 프로젝트 우수사례 발표회는 지난 4년여간 상담 및 심리치료를 지원받아 심리‧정서적 안정을 되찾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모범 청소년 1명과 우수 사례관리자 2명, 실무자 1명이 우수사례를 발표하고 표창을 받는 등 나눔과 화합의 장으로 꾸려졌다. 이날 현대차그룹 이병훈 이사, 재단 김교식 이사장, 참여자 및 실무자 등 80여명이 참석했다. 전체 프로그램은 참여청소년의 축하공연과 운영성과를 공유하고 우수사례 발표 및 심리치유 특강 순으로 진행됐으며, 그 동안 심리치료를 받은 우수 청소년들의 사례에 대한 수기모음집인 ‘나의 성장 스토리’ 배포와 심리치료 진행 결과물 전시 등을 통해 청소년들의 긍정적인 변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고 함께 공유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먼저 축하공연은 탈북청소년들이 직접 기타연주와 노래를 함으로써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소년의 성취를 잘 보여주었다. 다음으로는 그 동안의 운영 및 성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동안 다톡다톡(多talk茶talk) 프로젝트는 1차년도부터 최근 4차년도까지(2013. 6.~2017. 3.) 심리치료를 지원받은 청소년 379명을 포함하여 총 4,037명의 이주배경청소년을 발굴하여 맞춤형 전문 상담과 사례관리 및 실질적인 심리치료와 의료비 지원을 실시했다. 또한 가족상담 및 집단상담도 지원하게 되어 가족상담은 총 24가족(실인원 35명), 집단상담은 총 12Case(실인원 123명)을 지원했다. 특히 중간에 상영한 홍보 영상은 프로젝트에 참여한 청소년뿐만 아니라 가족, 사례관리자, 치료사, 실무자의 목소리를 직접 담은 영상으로 사업을 통해 심리‧정서적 지원을 받은 대상자들의 변화와 향후 사회에 기여하는 꿈까지 확인함으로써 좋은 자극이 되었다. 우수사례 표창 및 발표 시간에는 우수사례로 선정된 청소년, 사례관리자, 실무자 순으로 표창 수여 및 발표가 진행되었다. 특히 우수사례 청소년으로 뽑혀 사례발표를 하게 된 상민(가명/ 19세‧남)이는 어려운 가정형편에 학교에서는 언어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던 중에 다톡다톡(多talk茶talk) 프로젝트 지원을 받게 되었으며, 이후 전문심리상담을 받아 “앞으로 공무원이 돼서 사람들한테 편리한 민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사례관리자 중 한 명은 현장에서 경험한 이주배경청소년의 어려움을 생생히 밝혀 참여자들이 원하는 바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특별강연은 통합예술심리상담을 접목한 활동 위주의 강연이었으며,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쉽게 잘 따라할 수 있었다. 이번 다톡다톡(多talk茶talk) 프로젝트 우수사례 발표회는 2013년부터 시작돼 4년째 이어지고 있는 다톡다톡(多talk茶talk) 프로젝트의 운영현황 및 성과를 짚어보며, 참가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우수사례를 공유하고 긍정적인 변화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이번 행사를 통해 앞으로도 마음이 어려운 이주배경청소년들이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다톡다톡(多talk茶talk) 프로젝트 심리‧정서 지원을 받아 한국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서 안정적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 문의: 다톡다톡 프로젝트 담당(070-7826-1571, 1537)

2017.05.26